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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이야기가 있는 찻자리 2011
 
한국도요의 요람 광주/이천
    · 상품코드 : 1323915412
    · 출발일자 : 2011년 01월 05일 (수요일)
    · 여행기간 : 0박1일 (당일여행)
    · 판매가격 : 전화문의
여행상품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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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도자기]
광주지방은 15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한국 최대의 분원요지로 역할을 해 왔으며, 현재 남종면 분원리에 있는 분원리 도요지는 광주군 향토유적 제 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광주는 예로부터 최고 품질의 백토가 생산되던 곳으로, 조선시대에는 ‘사옹원’이라는 관 밑에 분원이 설치되어 왕과 왕실에서 사용하던 그릇을 생산해 왔습니다. 사옹원은 임금에게 음식을 올리는 일과 기타 대권 안에서의 음식 제공에 관한 일을 맡아 보았던 기관으로 어용 및 궁중용 그릇을 만드는 일도 관할하던 곳입니다.
그리고 ‘분원’은 사옹원의 분사인 ‘분사옹원’을 줄여 부르는 말로 추측되는데, 분원에서 진상했던 사기는 왕궁에서 쓰는 보통 그릇과 제기, 그리고 내의원에서 스는 그릇 등이며 이외에 왕가에 경사가 있을 때 쓰는 특수사기 등이었습니다.
광주의 사옹원에서 어기제조 및 공납을 맡은 것은 고려시대부터였으며 조선 태조1년(1392)에 사선서를 설치했다가 사옹방으로 그리고 세조 13년(1467) 사옹원으로 개칭하여 조선 말기까지 존속하였습니다. (여지도서)양근군조에 의하면 광주 번조소를 남종면으로 이전 설치한 것은 영조 28년(1752)이었다고 하며 매년 봄 가을에 사옹원 관원이 이용자기의 제조를 감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분원에서의 자기생산은 분기별 특징을 갖고 전승되었으나 17세기 후반부터 장인들의 생계를 보조하는 의미에서 개인적인 생산이 조금씩 허용되기 시작하고 18세기 들어오면서 상인 자본이 개입하면서 조금씩 변질되기 시작하다가 고종 21년(1884) 민영화되었습니다.
이와같이 경기도 광주는 분원이 설치된 이래 민영화되기까지 왕실진상용 백자의 제작을 전담했던 우리나라 유일의 관요였습니다. 분원관용 백자는 조선시대에 이념을 담은 절제된 아름다움과 세련됨을 지니고 있습니다. 세종때 벌써 그 세련된 품질에 대한 명성이 중국에 까지 널리 알려졌습니다. 즉, 광주는 고려 후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도자기에 있어서, 그것도 왕실에 납품하는 도자기에 있어서는 단연 선두를 달리는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천도자기]
오늘날 이천은 명실상부 최고의 도자도시이다. 그렇다면, 이천의 명물 도자기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이천도자기의 시작은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사시대 유적에 의하면 기원전 6천년~5천년경부터 이천지역에서 토기가 제작되어 청동기 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 까지 그 맥이 이어져 오고 있다.
이천도자기는 16세기초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백옥과 함께 이천지역의 특산물로 기록되었다. 구한말과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쇠티기에 접어들었으나, 1950년대 이후 전통도자기를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그 중심지가 바로 "이천"이다.
이천시 신둔면 일대에 터를 잡고 전통도자의 부활을 위해 노력한 결과, 고려청자, 조선백자 등의 전통도자기를 재현해 내는데 성공하였다.
전통도자기의 부흥을 계기로 이천시 신둔면과 사음동 일대에 이천 도예촌이 형성되어, 전통도자기 뿐만 아니라 현대 생활 도자기가 어우러진 대한민국 최고의 도자 생산지가 되었다.
이천에는 현재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340여개의 요장이 밀집되어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도자도시이다.
이천은 1988년부터 이천도자기축제를 개최하면서 국내 도자산업의 부흥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2001년 세계도자기엑스포, 2003,2005,2007,2009 세계도자비엔날레를 개최하면서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도자도시로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분원백자자료관]
마지막 조선 왕실의 가마터 유적에 설립한 백자 자료관이다. 조선왕조는 15세기 후반부터 사옹원의 분원을 이곳에 설치하여 우수한 도자기들을 많이 생산하였다. 마지막 관요가 된 분원은 1752년에 설치되었으며 1884년 민간에 넘어간 뒤 1920년대에 일본 사기에 밀려 문을 닫았다. 이후 오랜 시간 방치되었다가 2001년부터 2002년에 실시한 조선백자 가마터 발굴을 계기로 귀중한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 받게 되었다.
전시관은 매장된 유물들을 보호하고 현장성을 살리기 위하여 폐교된 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개관하였다. 전시관 외관은 철판으로 둘러싸서 수장고의 이미지를 형상화시켰으며, 전시관 내부에는 바닥 도편전시물과 토층전사 패널, 멀티스크린, 분원리 출토 요도구와 백자편, 경기도 도자유적 파편유물, 경기도 광주 백자편, 조선백자 완형유물 등을 전시해 놓았다.